이미지의 연대

정현(미술비평)

 

1980년대 서구미술현장에서는 디지털 기술에 의한 시뮬라크르로 구성된 현실을 닮은 세계에 대한 담론을 상당히 심도 있게 다루었다. 예술에 있어서 비물질의 문제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다. 그 전조는 이른바 탈매체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1960년대 이후부터였다. 198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회화의 정체성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알다시피 근대미술의 탄생과 기술매체의 발명과 같은 매체 문명의 전환기에는 늘 회화의 위기론, 종말론이 반복되었다. 돌이켜보면 입체주의자들이 일상의 파편을 회화 속에 기입하고 뒤샹이 제품설명서 이미지를 유리판에 새겨 넣어 마치 필름처럼 사용한 방식은 그리기란 재현 방식을 일상적인 방식으로 변용, 차용, 확장하여 회화를 동시대적으로 갱신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사진 위에 유화 물감을 덮어씌운 “초과회화 사진(Overpainted photographs)”라는 회화적 실험을 전개한다. 리히터는 초과회화 사진 작업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진은 거의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100퍼센트 그림이다. 회화는 항상 리얼리티를 포함한다: 누구나 물감을 만들 수 있고 그것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항상 그림으로 귀결된다... 나는 사진을 물감으로 문질렀다(smeared). 그랬더니 그 문제가 해결되었고 심지어 그것은 내가 주제에 대하여 말한 그 어떤 것보다도 나았을 정도로 좋았다.” 리히터의 말대로 형상을 인식할 수 있는 장면이 과연 리얼리티를 담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탈진실 시대(Post-truth era)의 이미지는 원본의 부재 또는 변용을 넘어서 가상세계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대체현실이 되레 현실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리얼리티는 단순히 가상과 현실의 문제를 넘어선 상태를 의미한다.

 

언뜻 보면 송수민의 회화는 포스트 인터넷 세대라 불리는 작업 유형을 공유한다. 송수민은 또래의 작가들처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서핑 도중에 발견한 흥미로운 이미지를 수집한다. 수집 목록은 일상의 장면과 사건사고의 보도사진이미지 등이 담겨 있지만, 일련의 이미지가 특정한 목적이나 방향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수집된 이미지는 분명 작가의 관심사와 취향을 반영하지만 그것이 그의 작업 세계를 대변해주지는 않는다. 작가는 어느 날 보도사진에서 받은 감정을 기억하기 위하여 이미지를 저장한다. 석 달이 지난 후에 다시 본 이미지에서 당시의 감정을 되찾기 어려웠다. 물리적 경험이 부재한 상태의 정보 이미지는 시간과 함께 감상의 느낌도 휘발시킨 것이다. 언뜻 보면 집요한 사생의 결과처럼 보이는, 자연 풍경, 심지어 들풀에 관한 식물도감처럼 보이는 이 풍경의 원천은 사실상 사적 기억이 부재한 이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적 기억의 서사가 부재한 저장된 이미지의 운명은 현실의 잡음이 사라진 상태가 되어 순수한 조형적 이미지로 작가에게 재발견된다. 이러한 경험들은 이미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선택 이유가 모호하고 기억이 불확실한 이미지만을 골라서 작업이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발터 벤야민은 도시에서의 만유(flanerie)를 통하여 수많은 사건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기억하였다. 그가 수집한 이미지들은 불연속적인 세계를 확인시켜주는 증거물이자 정체성이 모호한 흔적이었다. 그는 도시를 매우 사적인 관계로 엮어내고자 했다. 그것들은 현실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통로와 같았다. 그렇게 근대 도시는 개인이 접속하는 방식에 따라 무수한 새로운 가상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는 가설이 세워진다. 송수민도 디지털 세계를 배회하면서 이미지를 수집한다. 벤야민이 이미지를 통하여 자신만의 도시를 구성하려 했다면, 송수민은 저장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발견한 이미지에서 저장의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사진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동시대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위상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미지가 주인공이 되고 텍스트가 보충물이 된 시대란 것이다. 그러니까 송수민이 저장한 이미지는 상징적 표상이라기보다 기억을 위한 보충물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연 정보의 가치가 훼손되거나 증발한 이미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작가는 의미가 비워진 이미지들로부터 어떤 조형적 공통분모를 발견한다. 출처, 저장 동기, 주제와 무관한 또 다른 공유지가 나타난 셈이다. 푸코의 고고학적 연구는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가 불연속적이란 사실을 일깨워줬다. 인류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진리가 사실과 부분적으로 다르다는 발견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송수민은 계열, 주제, 진영 혹은 양식과 상관없이 오로지 유사한 형태를 발췌하기 시작한다. 회화로 생성되기 전 송수민이 수집한 이미지들은 그저 이미지 자체로서의 정보, 그러니까 파일 형식, 연결 프로그램, 위치, 크기, 디스크 할당 크기, 만든 날짜, 수정한 날짜, 액세스한 날짜로 표시된 이미지 데이터로만 존재했다. 그 어떤 관습을 따르지 않고 이미지에서 발췌한 개체들은 회화의 세계에 초대된다. 그곳에서 흔히 말하는 ‘우연의 공동체’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개체의 탄생 배경, 지역, 이름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단초는 소리였다. 이천의 금호창작스튜디오는 자연의 소리가 작업실 내부로 쉽게 유입된다고 한다. 이전 작업과의 큰 차이는 실제 작업으로 드러나기 보다는 작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듯하다. 아무래도 송수민의 회화는 풍경화의 성격을 띠는데, 작가가 발견한 개체 이미지가 대개 자연현상과 식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헌데 이번에도 자연현상과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즐비하다. 작품 자체로는 이전과 변별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차이는 과정에 있다. 우연히 자신의 공간으로 허락도 없이 침범한 소리는 작가에게는 초대받지 않는 손님과 다르지 않았다. 자연은 실제로 매우 소란스럽기 마련이다. 목가적인 풍경은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형상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소리의 침범에 의해 촉발된 작업은 실제 자연현상과의 조응의 결과로 볼 수 있겠다. 따라서 근작들은 소리의 조형성을 이미지로 치환하는 과정에 무게를 둔 작업이다. 그래서 송수민의 회화는 형상적인 것과 추상적인 형태가 포개어진 상태로 진화하고 있다. 문명은 인간을 자연과 지속적으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 아니면 숭고의 상징으로 이원화했다. 그러나 포용의 시대는 언어와 문화를 넘어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상태와 성질을 감각하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 안에 더 이상 타자가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송수민은 그가 속한 시간과 문화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의도치 않은 발견을 계기로 어쩌면 가장 수평적인 방법으로 세계와의 접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2018  ©  Song Su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