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Empty flower>, 캔버스에 아크릴,각 60x60, 2018
송 수 민
SONG SUMIN
없는 풍경 : 존재의 역설
A Bizarre Scene : The paradox of existence
(부분 발췌)
2018 성북 N작공모전 <없는 풍경 A bizarre scene>
글. 김소원(성북예술창작터 큐레이터)
오류와 마주하기
표현이나 규정이 어려운 대상들을 우리는 기묘하다고 느낀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고 듣고 느껴온 감각 세계 속 무엇과도 겹쳐지지 않거나 현실 세계와 떨어져 있을 때 구체적인 언어로 쏟아내기 어려운 법이며, 그것이 이상하고 기묘하게 비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세계에 호기심이 생기든 저항이 생기든 그것은 개인의 몫이겠지만, 명확하게 규정되거나 정의되지 않는 세계가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얼마나 민감하게 알아채고 있는지, 또 그 세계 앞에서 어떤 마음 자세를 갖는지 역시 다 다를 테지만, 예술가들은 규정되지 않은 그 세계를 향해 보다 예민하게 안테나를 뻗고 기민하게 알아채 그것을 다양한 예술 행위로 꺼내 놓는다. 또는, 너무 명확하게 정의되고 규정되어 있는 견고한 현실 세계에 일부러 균열을 내고 흔들어 적극적으로 질문을 촉발하기도 한다.
송수민 작가가 보여주는 묘한 세계는 흥미롭게도 매우 전형적인 현실 세계에서 왔다. 작가는 연일 보도되는 큰 사건들의 이미지를 웹상에서 차곡차곡 수집해왔다. 그러나 그 자료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일정 기간 묵힌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그 속에서 흐릿해질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기억을 주시하고 활용한다. 이는 자료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1:1 대응 관계와 맥락을 끊어내는 과정이자 일종의 발효와 같다.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에 의해 벌어지는 구조의 틈을 활용함으로써 모호한 지형의 그림들을 만들어 낸다. 세상은 이것을 ‘오류’라고 부르지만, 작가에게는 자신만의 요리 시간이다. 대개는 오류를 방지하거나 즉각 제거하기 마련이지만, 송수민은 되려 오류를 기다린다. ‘묵히기’와 ‘오류’라는 매개를 통해 예술적 개입에 필요한 거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묵힌다는 것은 또한 그에게 있어 기표(記表)만 남기는 것, 즉 내용을 버리고 껍데기만 남기는 행위다. <물불 물불>(2017) 시리즈를 보면, 군사 훈련 시 발생하는 화염의 연기는 분수 줄기와 흡사해 보인다는 이유로 서로 묘하게 중첩돼 있다. 두 이미지의 유사성은 캔버스에 붓질로 구현해 낼 때 더욱 두드러지는 점이긴 하다. 그러나 죽음과 공포를 상징하는 포화가 축제와 놀이를 상징하는 시원한 분수 줄기와 중첩되는 상황은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가 표면적으로 다루는 것은 감각 세계들의 단면들이다. 그러나 ‘묵히기’를 통해 원래의 맥락이 끊어진 사건과 사건, 현상과 현상들을 이어 붙이는 꼴라쥬, 즉 ‘뒤틀기’가 본 게임이다. 2017년도에 제작된 <barricade>, <膜(막)>, <빈풍경> 등을 보면, 매우 안정돼 보이는 풍경 중간에 갑작스레 흰색 도형들이 나타나 평온한 감상이 어려워진다. 관람자는 평소 방식대로 감상을 시작하지만 어느새 차단막이 내려오는 상황을 겪는 것이다. 화면 속의 생뚱맞은 도형들을 도려낸 것으로 보든 덧붙인 것으로 보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느닷없는 도형들의 등장, 나란할 수 없는 풍경끼리의 만남 앞에서 멈춰 서게 되는 순간을 주목해 봐야 한다. 꼴라쥬를 통해 이어진 이미지들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 앞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를 떠올려 보자. 기존 세계의 질서들을 뚝뚝 끊어놓고 기억의 오류를 이용해 틈을 벌리는 그의 작업은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 우리를 자극하며 존재론적 물음으로까지 이끌고 가는 면이 분명 있다. 한편, 작가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거나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 부분을 과감하게 들어내거나 순간순간의 감각과 아이디어에 의존해 폭과 폭을 이어가는 자유로움도 발견할 수 있다.